첫 부장 도전기 -2-
2018년도 비정기 전보로 지금의 학교에 오게 되었다. 나는 2년 연속 6학년 끝반 담임을 맡게 되어 우리 학교 제일 꼭대기층 가장 구석 교실을 사용하게 되었다. 이전까지는 담임과 적당한 크기의 업무를 맡아서 해왔지만 지금의 학교에서는 생활지도에 힘써야 하는 6학년을 맡게 되어 학교 업무 분장표에서는 빠질 수 있었다. 그리고 그 해, 다양한 학급 경영 활동을 해 볼 수 있었고 정말로 즐거운 한 해를 보냈다. 가장 꼭대기층, 가장 구석 교실이라 사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고 나는 우리 학생들과 즐겁게 보내는 데에만 내 에너지를 집중하면 되었다.
그리고 그 해, 나보다 1년 선배였던 옆 반 선생님은 안전생활부장을 맡게 되면서 참 바쁜 한 해를 보냈다. 그 해 우리 학교에는 참 많은 학교폭력 사안들이 접수 되었고 그럴 때마다 옆 반 선생님은 수업 종이 쳐도 바로 교실로 올 수가 없었다. 워낙 친했던 2018년도 동학년 사이라 그럴 땐 양 옆 반에서 부장님이 교실로 올라 오시기 전까지 수업 준비물을 확인하거나 수업 전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벌어 줄 때가 가끔 있었다. 학교 폭력 사안으로 부장님이 교무실로 내려갔던 어느 날에, 우리 반 학생들은 교과 시간이라 약간의 여유가 있었고 내가 대신 그 교실로 들어갔다. 부장님은 종이 친 뒤 3분이 지나고서 교실로 복귀했다. 1층에서 5층까지 숨 쉴 새도 없이 올라오신 듯 했고, 그 반 학생들은 우리 반 선생님은 너무 바빠요! 하며 이야기를 했다.
학교에서의 불편한 부분이었다. 나는 마음만 먹으면 존재감 없이 지낼 수 있었다. 관심을 덜 받는 만큼 대신 주요한 업무 분장 범주에서도 역시 상대적으로 관심을 받지 않았다. 하지만 나와 교직 경력 1년 차인 옆 반 선생님은 이미 1급 정교사 자격증을 받기 전 부터 부장 업무를 받아 왔고 그렇게 하지 않기엔 학교에서 눈치가 너무 많이 보인다고 했다.
다음 해, 나는 지역을 옮기느라 순위에서 계속 밀렸던 1정 연수를 뒤늦게 받게 되었고 5층 동떨어진 섬에 있던 나에게도 슬쩍 제안이 들어 왔다. 교직원 회의 때 마주쳤던 교감 선생님께서 이제 내년도에 부장 업무 해야 하지 않겠냐고 물어 보시길래 제가요? 하고 얼른 5층으로 올라왔다. 주말, 학교 선생님의 결혼식에서 만난 교장 선생님도 내년에 어떤 부장 해볼테냐고 물어보셨다. 학교 일을 최대한 안하자, 주의는 절대 아니었지만 아직은 그래도 학급 경영에서 해보고 싶은 것도, 수업 연구도 해보고 싶은 것이 더 많았다. 부장을 어떻게 내가 하나, 하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 때 즈음 나는 교사 자율 연구 모임인 학급살이 A to Z 에 참여하고 있었다. 학급 경영, 수업 연구에 대해 한 달에 한 번씩 모여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며 친목을 도모하는 모임이었다. 한 달 동안의 근황을 물어보고 다음 해 계획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중, 나승빈 선생님과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학급 경영과 수업에 대한 연구를 조금 더 해보고 싶은데 대학원 일정과 부장 업무에 대한 부담을 받고 있으니 이를 어쩌면 좋을까, 하는 고민을 나눴다. 나승빈 선생님은 시간과, 일에 대한 조언을 주었다. '앞으로 시간이 갈 수록, 더욱 바빠질 일만 있을 것이다. 그 다음 해가 되면 과연 여유가 생길까? 아마 또 다른 바쁜 일이 생기지 않을까? 그러니 바빠서 못한다기 보다는 어떻게 바쁜 일정들을 잘 관리해 나갈 것인가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 '고 말이다.
그리고 듣자 마자 나를 반성하게 했던 말이 있었다. 바로 '기여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에 대한 물음이다. 거창한 것 같지만 내 삶의 태도를 반성하게 했다. 내가 해야 할 의무를 가진 일들을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더 나아가 우리 학교 공동체를 위해 얼마나 기역하고 있는가. 나는 옆 반 부장님의 기여 덕에 내 학급 경영의 시간을 갖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는가.
학교 일이 적절하게 배분 되고 있는가, 에 대한 논의는 나중의 문제로 생각했으면 좋겠다. 어느 누군가가 희생해야 하는 것이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희생이 아니라 기여의 입장일 수 있다. 학교 일이라는 것이 칼로 두부 잘라 내듯 잘라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 어느 누군가는 조금 더 희생해 주어야 할 수 밖에 없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울며 겨자먹기로 한 사람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것은 정말 싫다. 하지만 나도 반성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분명 옆 반 선생님의 고생은 희생 보다 기여를 선택한 쪽이었고, 나승빈 선생님 또한 기여하는 삶에 대한 고민을 실천하고 있었다.
내가 신규 시절, 학급 경영을 재밌게 잘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내가 교실에서 하나 둘 시행착오 겪으며 배움의 시간을 갖도록 배려 해 주신 우리 학년부장님의 기여 덕분이었을 것이다. 이후에도, 학급 경영과 수업 연구의 시간을 가지며 교사로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던 것들도,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우리 학교를 위해 기여해주신 많은 선생님들 덕분 일 것이다. 꼭 큰 업무를 나눠 맡아야만 기여하는 것은 아니다. 다양한 방법으로 학교를 위해 기여해주는 분이 계셨으리라.
우리 학교에도 신규 선생님들이 몇 분 새로 들어왔다. 내가 배려 받았던 시간을 이제는 조금이나마 돌려 줄 시간인 것 같았다. 학교에 조금이나마 기여하는 삶을 살고 싶었고, 그래서 다음 해 업무 분장에서 부장을 맡기로 했다. 이게 다 나승빈 선생님, 그리고 2년 동안 옆반이었던 동학년 선생님이자 안전생활부 부장님 덕분이다. 그리고 나는 첫 부장 업무로 과학정보부를 받았고 온라인 학습 업무가 폭발했다. 정정하고자 한다. 이게 다 나승빈 선생님, 옆반 선생님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