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교육에서의 바람직한 교육관-인간관이란 무엇일까?
겨울이 깊어감에 따라 필자의 이번 학기 종강도 바로 눈앞까지 성큼 다가왔습니다. 이번에는 이번 학기 동안 필자가 수강중인 강의들 중에서 인상 깊었던 강의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우선 이 강의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언급해야할 얘기가 있습니다. 필자가 초등 교사를 목표를 한 이유, 교대에 진학한 이유는 필자가 13년간 몸담았던 대한민국의 교육현장을 바꾸어보고 싶어서였습니다. 초등학교 2학년, 초등학교 기간 동안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남자 교사 분을 담임선생님으로 만났습니다. 그분께서는 여학생들에게는 대체로 상냥하고 친절하였지만, 화가 나면 굉장히 폭력적으로 변하셨습니다. 특히 남학생들에게는 신체적인 폭력도 자주 가하셨습니다.
그 시절의 기억들 중 일부는 지금도 생생하게 남아있습니다. 필자의 경우, 그분께 뺨을 맞은 적이 있었습니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나서 지금 다시 떠올려보니, 뺨인지 귀 쪽인지 정확하지는 않지만, 분명 얼굴을 맞은 것으로 기억합니다. 만약 제가 그 처벌이라고 불리는 폭력의 단서를 제공한 것이었다면, 그나마 덜 억울할지라도 모르겠습니다. 필자가 그분께 맞은 이유는 우유를 먹고 그 팩을 치우지 않았기 때문에서였습니다. 그러나 필자는 분명히 우유팩을 상자 안에 곱게 두었었고, 이 점을 분명히 알려드렸습니다. 하지만 필자의 책상 위에 우유팩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그분은 학생이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하고 가혹한 처벌을 휘두른 것입니다. 실제로 혼나야했던 것은 당시의 어렸고 아무것도 몰랐던 필자가 아니라, 본인의 실수로 우유팩을 짝의 책상에 둔 학생이었습니다.
앞의 사건 때문에 어쩌면은 ‘남자 교사’에 대한 잘못된 편견을 한동안 가지고 있었고, 이것이 심화되어 필자는 10대 초반에는 ‘공무원’이라는 진로 자체를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들을 ‘도전을 두려워하고, 현실에 안주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이랬던 필자가 ‘초등 교사’라는 직업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하게 된 계기는, “그렇게 우리나라 교육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네가 성공해서 바꾸어봐.”라는 말을 듣고 나서입니다. 이 말은 저뿐만 아니라, 많은 분들도 들어보셨을 겁니다. 공부를 하기 싫어하는 학생들에게, 또 자녀들에게 교사나 부모가 자주 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어느 날, 이 이야기를 듣는데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진짜 한 번 내가 바꾸어 봐?’이 계기를 처음으로 해서, 시간이 지나면서 이러한 구상들이 구체화되었고 교대 진학을 목표로 정할 수 있었습니다.
과거의 경험과 연결하여 하려고 했던 이야기는 '교사의 인간성과 그 교사의 학급 목표(학생의 인간상과 관련)' 입니다. 필자는 윤리교육과 소속으로, 이번 학기의 심화 강의는 ‘도덕교육의 원전강독’ 강의를 선택하여 들었습니다. 맹자, 노자와 같이 일명 ‘축의 시대’의 학자들뿐 아니라, 현대의 풀 블룸과 조너선 하이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학자들의 원전에 대해 대략적으로 공부하는 강의였습니다. 수많은 학자들 중에서도 ‘조너선 하이트’라는 학자에 대해서 맡아 그의 저서를 읽어보았습니다. 그가 집필한 ‘바름 마음’에서 저자는 ‘선악을 구분하지 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문제들-종교, 정치적 논쟁 등-에는 선과 악의 이분법이 아닌 ‘옳음과 옮음의 대결’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지금까지 현대의 많은 이들은 선을 통해서 악을 규정하고, 그것들을 억누르고 제거하는 것을 생각해왔습니다. 하지만 실상은 그것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이,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이전까지는 어린 학생들에게 교사가 직접 판단의 기준이 될 영역을 정해준다고 생각했습니다. 학생들에게 선이 무엇인지 가르치고, 그것의 절대화를 통해서 이 세계가 정의롭고 도덕적인 세상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조너선 하이트의 의견에 의하면, 결국 분쟁이라는 것은 서로 '옳다'고 여기는 기준들의 충돌이었습니다.
조너선 하이트의 이러한 주장에 영감을 얻어서, ‘도덕교육의 바람직한 인간상에 대해서 적어보라’는 문제에 대해서 ‘도덕적 상대주의의 입장을 가지고, 공감을 할 줄 아는 인간’이라고 답변을 적었습니다. 이는 예비교사인 필자의 교육관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갓 스물을 넘긴 필자는 여전히 본인이 알고 있는 것들을 절대라고 여기고, 타인의 목소리에 귀를 닫는 경향이 있습니다. 필자 또한 그러할진데, 필자보다 어린 학생들은 더더욱 이런 경향이 강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절대주의적 태도는 학급 내에서 분쟁들을 유발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교사들은 학생들의 이러한 태도에 관심을 가지고 주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한민국에는 수천, 혹은 수만 명일지도 모르는 많은 교사들이 있습니다. 중등교사들의 경우 전인교육보다는 대학 입시에 더욱 신경을 많이 쓸 수밖에 없는 현실이지만, 이들도 각자 자신만의 교육관-인간관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학생들에게 지도하고자 하는 그러한 방향이, 본인의 생활과도 어색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약 교사의 행실이 그러한 목표와 부합하지 못한다면, 학생들은 교사의 지도에 불응할지도 모릅니다. 교육에서는 ‘Role-Model'(역할모델, 롤 모델)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되는데, 대부분의 학생들의 경우에는 이러한 역할을 해줄 어른들을 주변에서 찾기 어렵습니다. 그렇기에 더욱 필자를 비롯한 에비교사들과 현직에서 활동 중인 현직교사들이 각자의 교육관을 수립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그것에 맞게 우리들의 행실 또한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학생들에게 '상대주의적 입장'을 지도할 때 교사가 학생들의 행동을 단일한 잣대만을 가지고서 평가한다면, 학생들은 분명 반발할 것입니다. 이러한 지도의 방향과 교사의 언행의 합일에서, 진정한 전인교육의 실현이 가능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