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는 사진] 아름다운 사진은 미련이 많은 사진이다
“아름다운 사진은 미련이 많은 사진이다.”
-진동선 <사진 철학의 풍경들>
무언가를 깨끗이 잊지 못하고 끌리는 데가 남아있는 마음을 미련이라고 한다.
거기서 오는 아쉬움과 그리움은 자꾸만 삶을 돌아 보게 한다.
나는 늘 미련이 많은 사람이었다.
어제 다 못 먹고 남긴 치킨에 대한 미련,
여행지에서 미처 보고 오지 못한 노을에 대한 미련,
지나간 사랑에 대한 미련,
잡지 못하고 놓쳐버린 것들에 대한 미련,
잘 해주지 못한 것에 대한 미련.
내가 느끼는 미련을 사진으로 담아보면 어떨까.
#01 있어야 할 자리에 없는 것에 대한 미련
학교에서 지내다 보면 체감 상 새해는 늘 3월에 시작하는 느낌이다.
3월이면 교실은 북적북적 새로움으로 가득 찬다.
새로 만날 아이들, 때 묻은 물건들 대신 반짝반짝 새로운 물건들, 새로운 1년에 대한 기대와 설렘.
학교에서 3월은 이렇듯 봄과 함께 새로움으로 시작된다.
그런데 지금 있어야 할 자리에 없는 것들이 많다.
아이들이 앉아 있어야 할 책상과 의자에 아이들이 없다.
신발장에 가득 차 있어야 할 아이들의 새하얀 신발이 없다.
새 교과서, 새 공책, 새 학기에 쓰임을 기다리는 반짝이는 물건들이 없다.
새로운 아이들과 만들어 갈 설렘과 기대는 없고 어느새 지침과 무기력으로 바뀌어 있다.
조용한 복도, 텅 빈 교실, 새로움으로 가득 차 있어야 할 자리를 계속 바라보게 된다.
있어야 할 자리에 없는 것을 그리며 아직 시작하지도 않은 것 같은 봄이 이렇게 다 지나간다.
#02 곧 사라질 것에 대한 미련
철산주공 8단지는 숲이 우거지고 꽃이 만발한 오래된 단층 아파트다.
몇 해 전 부터 SNS에 겹벚꽃 명소로 알려지다가 올해는 특히 이번 봄이 지나면 다시 못 볼 겹벚꽃 명소로 더욱 유명세를 탔다.
실제로 가보면 도심 한복판에 이토록 아름다운 주거지가 있었다니!
라는 감탄이 절로 나올 만큼 아름다운 곳이다.
해외 어느 작은 도시의 조용한 마을에 있는 듯한 느낌.
서울에서는 보기 힘든
낮은 층고, 하얀 벽에 빨간 지붕, 네모가 아닌 건물의 외벽, 연두색 담쟁이덩굴,
온통 분홍빛 겹벚꽃 나무 그리고 건물 사이사이 숲길에 스며드는 햇살.
사람도 건물도 빼곡한 도시에 사는 우리들에겐 상상만 해도 미소가 지어지는 바로 그 풍경이 맞다.
이 동네 전체가 개발 예정지역이라 곧 철거가 된다고 한다.
7단지는 이미 허물어졌고, 새로운 아파트 단지로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개발이라는 것은 분명 미래를 바라보고 이루어지는 일일 것이다.
거주민들에게는 더 좋은 환경에서 살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할 테고.
현재의 모습을 유지한 채로 재개발을 하기 에는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클 테지만,
그럼에도 이런 아름다운 곳이 사라질 수밖에 없다는 것은 못내 아쉽다.
곧 사라질 수많은 것들에 대한 미련,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고 행복해야 하는 이유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