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쌤이알고싶다] 이영근 선생님 2
날마다 도서관에 가 책을 읽고 노래를 부르는 교실이라니. 아이들도 선생님도 너무 행복할 것 같아요. 저도 아침마다 아이들과 그림책을 읽고 있는데요, 책을 어떻게 함께 보는 게 가장 좋을까 하는 사소한 고민도 생기더라고요.
정순샘: 저는 실물화상기를 사용하기보다 실물로 봅니다. 읽기 전에 “안보일 수도 있지만 머리 속으로 본다고 생각하자.”라고 말해줍니다. 선생님이 들려주며 친구들과 함께 이야기 나누는 시간이 더 소중하니까요. 저는 맨발교실이라 책을 읽어줄 땐 바닥에 옹기종기 앉는 책자리로 모이는데 집중할 수밖에 없는 거리지요.
정말 그럴 것 같아요. 정순샘 교실 이야기가 더 궁금해집니다.
정순샘: 2교시 쉬는 시간에는 다 같이 나가 운동장 두 바퀴 달려요. 밖에 나가 달리는 그 자체만으로도 아이들은 좋아하지요. 날마다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활동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이들에게 안정감을 주고 학급에 체계를 세워주니까요. 하루를 마칠 때는 꼭 책상 서랍을 정리하고요. 저는 학습지를 그리 좋아하진 않아요. 공책 네 권에 모든 걸 다 쓰고 정리하지요. ‘보석상자’라는 일기장, 독서장 ‘다독다독’, 한글사랑 열 칸 공책, 알림장 이렇게요.
금요일마다 5교시에 좋아바 학급 회의를 합니다. 이번 주에는 미끄럼틀에서 술래잡기하는 문제에 대해 함께 이야기했습니다. 안전 문제를 비롯해 정말 안 되는 것에 관련해서는 단호하게 말해주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친절할 때는 친절하지만 아닌 것은 아니라 할 수 있어야 하거든요. 일주일을 돌아보는 시간은 어린이들에게도 참 중요합니다. 드러나지 않는 문제를 가지고 있는 친구들의 마음을 쓰레기통 비우듯 풀어낼 수 있는 시간이 됩니다.
우와. 초등 1학년 교실에서도 학급 회의가 가능하군요! 영근샘이 《초등자치》(에듀니티)란 책도 쓰셨잖아요. 안 그래도 저학년에서도 가능한 학생 자치나 토론에 대해서도 여쭈어보고 싶었습니다.
영근샘: 초등 1, 2학년의 경우는 생각보다는 겪은 일(사는 이야기)이 중심이 되어야겠지요. 토론의 기본은 듣기 말하기니 그 연습을 하는 것입니다. 주말 이야기를 하거나 그림책으로 시작해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도 토론의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3, 4학년은 자기 생각이 여물어지는 때입니다. ‘친구들은 많아야 한다고 생각하나요?’와 같이 아이들이 직접 겪은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토론할 수 있습니다.
5, 6학년은 논리를 갖춘 토론으로 나아가는 단계이지만, 사실 쉽지는 않지요. 고학년이지만 삶에서 논제를 통해 자기경험으로 토론합니다. 토론에 익숙해지면 토론 주제를 사회로 넓혀갈 수도 있습니다.
이런 과정으로 토론할 수 있는 힘을 계속 길러가야 합니다.
영근샘 교실에 책이 참 많네요. 책이 많은 까닭이 궁금한데요?
영근샘: 사실 저는 어렸을 때 책을 거의 읽지 못하고 자랐어요. 선생하고 글쓰기와 토론 공부를 하면서 책을 많이 읽기는 했지만 그래도 아쉬움이 많이 남았죠. 제가 읽은 책이라는 게 대부분 교육 관련 책이니까요. 지금도 책을 많이 읽는 선생님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제가 아는 게 참 적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아요. 그래서 우리 반 아이들은 책을 많이 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더욱 했습니다. 물론 손발 놀리며 노는 것은 기본이겠죠. 실제로 우리 반은 책 읽는 시간을 많이 갖고 있어요.
하지만 한편으로 선생 하면서 제가 ‘책을 많이 읽고 있구나.’ 하는 생각도 들어요. 아이들이 쓴 글똥누기, 일기를 날마다 읽고 있으니까요. 아이들이 자기 삶을 고스란히 담아낸 글을 날마다 읽는 거죠. 꼭 파는 책은 아니지만, 아이들 글을 읽으며, 내가 글을 많이 읽고 있구나, 삶을 많이 읽고 있구나, 생각하기도 합니다.
영근샘: 요즘 저는 윤구병 선생님 일기, <윤구병 일기 1996>(천년의 상상)을 날마다 읽고 있어요. 책이 참 두껍죠? 변산공동체를 일구시던 1996년 한 해 일기임에도 919쪽이나 되거든요. 아침이면 그날 선생님 일기를 읽어요. 요즘은 오늘까지 읽고 첫날 일기부터 다시 읽고 있어요. 두세 번은 더 읽을 생각인데, 선생님 일기를 날마다 읽으며 드는 생각이 좋거든요. (저녁노을을 보며) 해가 지고 난 뒤 동쪽 하늘에 부챗살처럼 붉은 노을이 깔리는데 참 아름답다.(8월 12일)’ 같은 글에서 잠시 멈추게 돼요. 나도 이렇게 글을 쓰고 싶다 생각하며 밑줄을 긋고, 선생님의 깊은 철학과 고민을 가끔 선생님 뵐 때 여쭤볼 수 있어 좋기도 하고요.
공교육 교사로서 아이들이 책을 많이 읽게 해주시려는 마음이 느껴집니다.
영근샘의 글을 읽으며 따뜻하고 단정한 문장이 맑은 아이들의 글과 닮아있단 생각을 했습니다. 방금 해주신 말씀처럼 평소 많이 읽고 쓰신 분이라는 생각과 함께요. 글쓰기의 특별한 원칙이나 방법이 있으신가요?
영근샘: 글똥누기, 희망의 노래, 아침햇살, 아띠, 밥친구, 나들이, 들살이, 작은여행, 꿈이, 영근선생편지, 시로 여는 아침, 책나래, 일기, 토론, 참사랑땀 학급살이, 참사랑땀 회의, 식구와 함께 하는 주말과제, 텃밭, 자연미술.. 우리 반에서 아이들이 하는 활동 이름들입니다. 모두가 우리 말이고 우리 글이지요. 저는 평소 글을 쓰거나 말을 할 때도 다른 나라 말보다 우리 말과 글을 살려 쓰려 애씁니다.
평소 제 말하는 버릇을 돌아봅니다. 의식도 못 한 채 사용하고 있는 외래어나 한자어들이 문득 부끄러워집니다. 선생님과 말씀 나누면서 앞으로 더 책을 쓰실 생각은 없으신지 궁금해졌습니다.
영근샘: 제가 ‘초등참사랑’으로 알려지면서 책을 내자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선뜻 책을 내지 못하겠더라고요. 아직 글로 담아내기는 모자란다고 생각했습니다. 글쓰기회를 만나면서 ‘이렇게 소리 없이 아이들과 잘 사는 사람들이 많은데 내가 어떻게 책을 써.’ 하는 생각이 컸거든요. 만일 제가 책을 낸다면 보리의 ‘살아있는 교육’에 들어갈 만큼 제대로 써야지 하는 마음을 먹었습니다.
마침 에듀니티에서 토론으로 원격 연수를 만들자고 제안했습니다. 선뜻 한다고 했는데, 그 까닭은 토론은 빨리 나누고 싶은 생각이었거든요. 그러며 토론으로 책도 썼어요. 토론은 방법이니까 책으로 더 널리 알릴 수 있겠다 싶었거든요. 한 권을 쓰고 나니 술술 썼던 것 같아요. 이제껏 공저까지 8권 어린이 일기 모음 3권까지 11권을 냈으니까요.
‘내가 책을 내는 이유가 뭐지? 이름을 알리기 위해서인가? 이름은 그 전에 훨씬 더 알려줬지. 천천히 가자.’ 싶어서 한동안 개인 책을 쓰지 않고 있어요. 좀 쉬었으니 조금씩 천천히 글을 쓰고 있어요.《초등 학급 운영 어떻게 할까?》추천사에 이호철 선생님 말씀처럼 글똥누기, 우리아이토론, 노래 이야기 같은 교실살이 하나하나를 좀 더 깊게 써보려고 생각하고 있어요.
‘글똥누기’란 말도 이영근 선생님께서 만드신 거죠? 날마다 똥을 누듯, 날마다 글을 쓰면서 자기 생각이나 감정을 풀어낸다는 뜻에서 ‘글똥누기’는 정말 최고입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똥과 관련되기도 했고요.(웃음) 그런데 이렇게 생각함에도 저는 사실 꾸준하게 교실에서 실천하진 못했거든요. 선생님께서 지금 말씀하신 것처럼 책을 써주시면 정말 도움이 되고 좋을 것 같아요.
여쭤보고 싶은 것들이 남았는데 벌써 시간이 이렇게나 흘렀네요. 평소 페이스북 글을 보면 자녀들과 관계도 무척이나 끈끈하신 느낌이 들어요. 커갈수록 그런 관계를 유지하기 싶지 않은데 좋은 관계를 잇는 방법이 있을까요?
영근샘: 아무것도 해준 게 없는 게 방법입니다.(웃음) 사실 우리도 여느 부모들과 다르지 않아요. 욕심이 같아요. 여전히 우리나라에선 학벌이 중요하게 여겨지기 때문에 좋은 대학을 가면 좋겠다는 속물 같은 욕심이 없다고는 할 수 없겠지요. 그럼에도 우리 아이들이 그저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더 컸어요. 그래서 아이들 초등학교 때까진 학원에 안 보내고, 마당 있는 집에서 살았거든요. 희문이가 5학년 때부터 중3 때까지 우리아이토론를 함께 하긴 했지만, 그것 빼고는 특별히 해 준 게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아요. 고3 때도 그랬고.
대신 수민이와 희문이는 3살, 5살 때부터 글쓰기회를 따라다녔어요. 토론연구회 때도 함께 할 때가 많았어요. 선생님들을 집에도 많이 초대하고 뒤풀이도 함께 했지요. 이게 결국 다 공부가 아닐까, 부모가 공부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우리가 해준 거라며, 정순샘과 서로 위안했답니다. 다시 선택해도 같은 길을 갔을 거니까요.
마침 이때 휴대폰이 울렸다. 영근샘과 정순샘의 따님, 나와 이름이 같아 괜히 더 정이 가는 수민 양의 전화. 날은 이미 어두워져 창밖이 까맣게 보였다.
“선생님 같이 저녁 먹으러 가실래요?” 소중한 주말, 두 분의 귀한 시간을 내어 만나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한 데 염치없이 저녁까지 얻어먹었다. 그것도 곱디고운 수민 양과 함께.
막걸리를 한잔 하고 사진을 찍다가 우연히 영근 샘 휴대전화 뒤편에 꽂혀있는 쪽지를 보았다.
지난여름 1정 연수생 선생님께 받은 편지였다. 손편지에 담긴 마음과 그 마음을 귀하게 헤아려주시는 영근샘의 진심이 전해져 괜히 뭉클해졌다.
빨간 꼬막을 비벼 먹으면서 딸 수민양께 정순샘과 영근샘이 어떤 엄마, 아빠인지 물어볼까 하다가 말았다. 인터뷰 질문으로 미리 생각해왔던 두 분의 아름다운 부부관계 비법도 그냥 묻지 않았다.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았으니까.
때론 말하지 않는 것들이 더 많은 것을 말한다. 주고받는 따뜻한 눈빛과 신뢰, 자연스레 흐르는 편안한 분위기, 깊은 애정과 같은 것들은 그냥 느껴지는 것이니까.
지하철역으로 와 인사를 드렸다. 계단을 오르며 헤어지는 아쉬움과 감사함에 괜히 돌아보는데 영근샘도 나를 보고 계셨다. 서로 고개를 숙이며 순간 영근샘 책에서 본 ‘아이들을 섬기는 교실’ 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아이들을 섬기며 사시는 영근샘의 모습이 눈앞에 보이는 듯했다. 아이들과 비슷한 양말을 신고 온 얼굴을 이용해 아이처럼 웃고 춤추는 선생님의 웃음이 떠올랐다. 영근샘과 정순샘이 책에 적어주신 편지를 읽으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나섰던 길보다 더 짧고 따뜻했다.
닮고 싶은 교실과 삶을 몸소 보여주신 영근샘과 정순샘께 깊은 감사와 존경을 다시 한 번 전하며, 이번 인터뷰 글을 마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